2006-02-28

An Old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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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화창했던 어느 봄날 오후.
친정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조카가 아들을 얻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 딸은 아기가 보고 싶다고 서울에 가자며 야단이더니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그럼 이모는 할머니가 되셨네? 으악! 우리 외할머니가 증조할머니야?"
어머니가 증조할머니가 되시다니---그러고 보니 어느새 어머니도 팔순을 눈앞에 두신 아득한 연배가 되셨다.

처녀시절 일본 유학의 길이 열려 있었지만 완고하신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하시고, 아버지와 결혼하셔서 오직 집안을 꾸려나가시는데 당신의 온갖 정성을 쏟으셨다.
아버지께서 직장에 계실 때는 집에 찾아오는 손님도 자주 치르셨다. 음식쏨씨가 좋으셨지만 어쨌든 그 많은 음식을 말없이 혼자 잘도 해 내셨다. 아버지 생신 때면 만드시는 쑥구리떡은 아직도 유명하다.

나는 우리 오남매 가운데 어머니 속을 제일 많이 태워 드렸다.
결혼을 늦게 한 나 때문에 어머니 수첩에는 신랑감들의 신상명세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신랑감의 사주를 본 것만도 적지 않으시며 누가 나를 데려갈지 사주본 데 든 돈만은 꼭 받아 내겠다고 웃으며 벼르셨지만 결혼 후에도 늦게까지 아기가 없는 나를 데리고 병원 다니시랴 약 달여 먹이랴 오히려 고생만 더 하셨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얻다시피 한 큰딸 성민이를 키우면서 조금만 이상해도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깜짝 놀라게 했지만 한번도 화내지 않으시고 정말 구르다시피 달려와 주셨다.
하지만 한번은 걱정을 들은 일도 있었다.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무심코 "또 오줌 쌌구나" 라고 했던 한마디 때문이었다. "오줌누라고 기저귀를 채웠으면 눈거지, 어떻게 쌌다고 할 수 있느냐?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는 말씀이셨다. 아이를 키우면서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하라는 그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오남매를 그런 정성으로 키우셨겠지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꽃을 좋아하셔서 집 앞 자그마한 정원을 온통 꽃나무 숲으로 가꾸어 놓으신 어머니---늘 바쁘다는 핑계로 허둥거리며 사느라 이 좋은 날씨에 벚꽃 구경 한번 시켜드리지 못해 죄송하기만 하다.
지금쯤 불광동 집 정원에도 꽃들이 활짝 피었을 텐데.
오늘은 어머니께 전화라도 꼭 드려야겠다.


_ 1994.5 '원우'지에 실린 작은누나의 글 '어머니 우리 어머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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